사기로 얼룩진 10년 우정
야구 천재 오타니 쇼헤이가 미국 프로야구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할 때부터 통역을 맡던 미즈하라 잇페이는 '오타니의 단짝'이라 불렸다. 오랜 시간 신뢰를 가지고 함께했던 잇페이는 불법 도박에 손을 대는 것에 멈추지 않고 수백만 달러의 오타니 돈을 훔쳐 도박에 사용한 일에 밝혀졌다. 이 사실을 전달받은 오타니는 잇페이를 해고하게 되었다. 오타니는 잇페이를 신뢰하며 특급대우를 하며 연봉 9억 원을 주었지만, 친구는 만족하지 못했던 듯하다. 오타니는 새로운 통역사를 구해야 하는 등 불편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처럼 오랜 동료의 등에 칼을 꽂는 행위를 했던 사례를 찾아보자.
카이사르의 후원을 받은 부르투스의 배신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Marcus Junius Brutus)는 정치적으로 율리우스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의 후원을 받았다. 카이사르는 갈리아 원정에 성공하면서 로마를 유럽사에 제국다운 면모를 갖추게 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부르투스의 어머니와 카이사르가 내연관계였고 부르투스 또한 카이사르에 충성을 다했다. 카이사르가 로마의 권력을 장악하면서 로마의 공화정을 이끄는 귀족들은 위협을 느꼈다. 부르투스도 로마는 공화정 체제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공화주의자들 사이에서 카이사르 암살계획에 부르투스까지 참여한다. 카이사르는 독재관으로 임명되는 날 원로회의에 참석했다가 공화주의자들 칼에 수차례 찔리며 죽임을 당했다. 그 당시 부르투스도 카이사르에 칼을 꽂았고 카이사르는 "부르투스 너마저"라는 일화를 남겼다.
종교적 신념이 달라 모어를 탄압했던 헨리 8세
토마스 모어(Thomas More)는 영국의 법률가, 사회 철학자, 저술가, 그리고 정치인으로, 헨리 8세의 통치 초기부터 왕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모어는 탁월한 능력은 헨리 8세 눈에 들어 여러 중요한 공직을 맡았다. 그는 1529년에 잉글랜드의 대법관으로 임명되었다. 헨리 8세와 모어의 관계가 금이 가기 시작한 원인은 헨리 8세가 첫 번째 부인과의 이혼을 가톨릭교회에서 허가하지 않자 영국 교회와 분리하는 과정에서 시작한다. 토마스 모어는 깊은 카톨릭 신앙을 가지고 있었으며 헨리 8세 스스로가 영국 국교회의 수장인 것을 지지하지 않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모어는 대법관직에서 사임해야 했으며, 헨리 8세는 그를 국가를 배신했다는 반역죄로 처형했다.
오랜 세월 동안 친구라는 믿음을 저버린 사람에게 느끼는 배신감은
그 어떤 배신보다 쓰고 아프다는 구절을 곱씹게 만든다.
신뢰라는 단어와 밀접한 인물에 관한 글을 청랑이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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