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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랑 투자 식견58

부동산 투자의 경고등은 고금리다?! 코로나가 만든 초저금리 시대2020년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의 대확산은 세계 경제의 발목을 딱 붙잡아 버렸다. 지구상의 모든 기업과 국가는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이 엄청난 팬데믹에 휘청거렸고, 그 후유증은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상당 기간 계속될 것이다. 주요 강대국은 팬데믹 극복을 위해 경제학의 기본에 근거, 금리를 빠르게 낮춰 시장의 통화량을 증가시키는 정책으로 시장 정상화를 꾀하고자 했다. 그 결과 제1금융권 은행들이 국가의 정책에 발맞춰 개인과 기업들에 초저금리로 대출해주면서 비정상적인 투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코로나의 확산으로 세계의 금융지수는 급락을 거듭하다 빠르게 회복 중이지만, 저금리 대출 자금은 투기 쪽으로 몰려들었다. 금융 시스템을 이용한 투자행위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 2023. 2. 4.
지금 몇 시? 주식 매수 타이밍! 주식을 사면 바로 마이너스2021년 ‘주식 광풍’을 타고 수많은 개미들이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개미들은 주식을 해서 재미를 보지 못했다고 푸념한다. 오히려 자신이 주식을 사기만 하면 왜 주가가 떨어지느냐고 울상을 짓기도 한다. 이는 주식 투자가 그만큼 어려운 거고 관련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매수하려는 기업에 대한 조사부터 회사가 돈을 잘 버는지를 점검하는 재무 상황, 주가에 대한 그래프를 분석하는 차트, 누가 사고파는지의 매동 등 파악해야 할 사안이 수두룩하다. 설령 이 모든 것을 알았다고 할지라도 이 정도는 겨우 주식을 매수할 준비가 되었을 뿐이다. 완벽하게 준비운동을 마쳤다고 판단하고 주식 매수를 샀는데도 또 결과는 마이너스. 남들은 주식으로 재미를 봤다며 휘파.. 2023. 1. 15.
조선 수도 이전 해결사 '학군' 개성 권문세족 한양 이전 꺼려고려가 망하고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는 개성을 임시수도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려에 대한 그리움과 새로운 조선에 대한 반감을 지우기 위해 수도 한양으로 천도했다. 조선 조정이 야심 차게 수도를 한양으로 이전을 했지만, 관리들은 인프라가 갖춰진 개성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조정은 개성의 권문세족들을 한양으로 옮기기 위해 자식들 교육에 필요한 학군을 조성하였다. 이 유인책의 효과가 적중, 권문세족들이 개성을 떠나기 시작한 것이다.한양에 4개 학교 세워 귀족 유인세상의 모든 부모는 자식 교육 문제라면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든다. 고려 말 귀족들도 자식들의 교육에 대해 고심했던 것 같다. 조선 조정은 한양에 4개 학교(중부, 동부, 서부, 남부 학당)를 만들어 가르치도록 .. 2023. 1. 13.
조선시대 돈 버는 직업 '역관' 조선시대 대부호는 역관이 많아현재는 다양한 분야에서 큰돈을 버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조선 시대에는 큰돈을 버는 직업은 역관(譯官)이 유일했다. 역관은 외교상 통역과 번역을 대행하는 관직이었다. 역관은 국가의 중차대한 일을 맡았으면서도 천시받았다. 높은 관직에 오르는 게 어려웠던 역관들은 무역 거래를 통해 큰돈을 버는 것으로 관직을 대신했다. 자식들에게 대물림해주는 일도 많아 역관 집안은 부도 같이 대물림되었다.조선 최고 거부 역관 변승업 역관 변승업(卞承業)은 실학자 박지원의 소설 허생전에 나오는 거부 변 씨의 롤모델이자 조선 시대의 최고 부자였다. 그는 아버지의 역관 직업을 대물림하여 일본어 통역관이 되었다. 돈을 굴리는 방법을 알고 있던 변승업은 청나라와 직거래가 어려운 점을 간파하여 형제들과 통.. 2023. 1. 11.
조선의 '강남'은 북촌 한국의 부자 동네 서울 강남한국의 상류층이 살며 학군 좋기로 소문난 곳이 서울 강남이다. 강남은 교통 인프라 및 다양한 편의 시설을 갖추고 있어 집값이 전국에서 가장 비싼 동네다. 강남에 집 한 채 보유하고 있으면 노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생길 정도다. 집값이 비싼 동네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법. 조선 시대 때는 현재의 강남에 버금가는 동네가 지금의 서울 명소로 널리 알려진 '북촌'이었다. 북촌이 왜 조선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동네가 되었을까?이성계와 이방원의 불편한 관계조선을 건국한 이성계(李成桂)는 고려 수도 개성을 버리고 한양으로 천도를 단행했다. 경복궁을 지으며 나라의 기틀을 다져 나가고 있었다. 이때 이성계 아들 이방원(李芳遠)은 왕권에 도전하여 이복동생과 형제를 죽이는 왕자의 난을 일.. 2023. 1. 10.
퇴계 이황의 투자 전략 '재테크의 달인' 퇴계 이황조선의 대학자 퇴계(退溪) 이황(李滉)은 어릴 적 가난하였다. 퇴계는 학문에 힘쓰느라 자주 굶주려야 했고 그런 그에게는 가난이라면 지긋지긋했던 모양이다. 후대에 대학자로 알려졌지만, 재테크의 달인이었던 점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학문에 힘쓰면서도 퇴계는 재산을 불리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돈 버는 데만 혈안이 된다면 한낱 이방에 불과하다고 말한 그였지만 든든한 자산을 기반으로 후학을 길러낸 덕분에 역사에 위대한 학자로 남을 수 있었다. 가난했던 이황이 어떻게 큰 자산을 모을 수 있었을까.농업을 통해 이익을 키워퇴계는 먹고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농업 관련 서적을 살피며 당시에 돈이 되는 작물을 키우기로 하였다. 당시엔 목화가 대표적으로 돈이 되는 작물이었다.. 2023.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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