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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랑 이슈 식견

왜 예루살렘은 분쟁의 중심이 되었을까?

by JadeWolveS 2023.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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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화약고가 된 이스라엘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하여 자국민을 납치해 갔다. 하마스는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인질을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이스라엘은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방식으로 하마스를 무참히 공격했다. 가자지구로 숨어 들어간 하마스 때문에 무고한 민간인들까지 희생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완전히 제거하기 전까지는 전쟁을 종료할 생각이 없다. 이에 주변국들은 중동전쟁으로 확장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중동의 화약고라 불리는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은 고대부터 분쟁의 중심에 있었다. 예루살렘 분쟁의 역사를 알아보자.

 

신바빌로니아에 파괴된 예루살렘

예루살렘은 고대부터 유럽, 아시아, 아프라카를 접하는 요충지로 다양한 민족이 섞여 살면서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기원전 13세기 모세가 신의 부름을 받고 이집트의 지배를 받던 히브리인(지금의 유대인)을 가나안땅으로 인도한다. 훗날 다윗과 솔로몬이라는 위대한 왕들이 나오면서 이스라엘 왕국의 최전성기를 보냈다. 하지만 중동에서 신흥강자로 떠오른 아시리아에 멸망한다. 이후 아시리아를 멸망시킨 신바빌로니아 왕국은 유대인의 성전인 예루살렘을 철저히 파괴하고 그들을 바빌론으로 이동시킨다. '바빌론유수'라 불리는 이 시간부터 유대인은 조상의 고향을 떠나 남의 나라에서 숨죽여 살아야 했다.

 

로마 -유대전쟁 이후 패한 유대인은 로마의 식민지로 강제 이주된다. 출처:네이버이미지

 

예수 재림 후 로마에 다시 무너진 예루살렘

페르시아제국은 신바빌로니아 왕국을 멸망시키며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도록 허락했다. 유대인들의 종교를 인정하여 예루살렘은 다시 예전 모습을 찾아가는 듯하였다. 그러나 그리스 북부 도시 마케도니아에서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를 침략하자 유대인들은 페르시아를 지지했다. 알렉산더 대왕이 일찍 사망했고 이후 로마가 예루살렘을 점령한 뒤 예수가 재림하기 전까지는 평화로웠다. 하지만 로마가 예수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를 국교로 하고 타 종교는 이단으로 몰아 유대인들을 탄압하였다. 유대인들은 강력한 로마를 상대로 봉기했으나 무참히 도륙당하고 흩어지게 된다.

이슬람교의 성지가 된 예루살렘

이슬람교의 창시자 마호메트는 '구약성서'를 계승하며 신의 예언자를 자처한다.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이슬람 사원을 짓기 시작했고 중앙아시아 지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이슬람교를 전파한다. 이슬람인에게 예루살렘은 성지로 자리 잡았고 기독교를 신봉하는 유럽 국가들이 예루살렘을 탈환하고자 십자군 전쟁을 일으켰지만 결국 실패한다. 이후 예루살렘은 이슬람교를 국교로 한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세계 1차 대전이 발발하며 오스만 제국에 반기를 들었던 유대인들은 전란에 휩싸이게 된다.

 

 

예루살렘은 히브리어로 평화가 있는 장소라는 뜻이다.
하지만 지명과 달리 오늘날까지도 예루살렘은 전란으로 인해
중동의 화약고로 불리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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